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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타축제
제목 恨을 나눔으로… 베풀고 떠나다 날짜 2014.03.14 23:42
글쓴이 운영자 조회 844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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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순에도 빈병·폐지 모으고 정부 생활지원금까지 저축
3차례 걸쳐 장학금 1억 기부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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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생전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로부터 안마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.
/정경열 기자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황금자(90) 할머니가 26일 영면(永眠)했다.

황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5명만 남게 됐다.

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(정대협)는 황 할머니가 이날 새벽 1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운명했다고 밝혔다.

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13세 때 일본인에게 붙잡혀 흥남의 유리 공장으로 끌려갔다,

3년 뒤쯤 간도로 옮겨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었다.

광복 후 귀국했지만 황 할머니는 피해 후유증으로 홀로 외롭게 살았다.

위안부 피해자로 신고는 했지만 공개 활동을 하지 못한 것도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다.

하지만 할머니는 가슴에 멍울 진 한(恨)을 이웃을 돕는 것으로 승화했다.

할머니는 빈병이나 폐지를 모아 판 돈과 정부의 생활지원금을 쓰지 않고 모았다.

난방비가 아깝다며 겨울철에도 36㎡(11평)짜리 임대아파트 냉골에서 지냈다.

이렇게 모은 돈 1억원을 세 차례에 걸쳐 "장학금으로 써달라"며 강서구에 기부했다.

2011년 7월 정부는 황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고,

같은 해 12월 황 할머니는 '사후 전 재산을 지역 장학회에 기탁하겠다'는 유언장을 작성했다.

황 할머니 장례식 상주는 아들처럼 지냈던 김정환(49) 강서구청 장애인복지팀장이 맡았다.

김 팀장은 "맺힌 한 때문에 세상에 마음을 못 열던 할머니는 평소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받으면

어려운 학생을 더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"며 안타까워했다.

 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강서구청에서 구민장(葬)으로 치러진다.

 

조선일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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